왜 진작 이 영화를 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무려 1996년에 개봉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반전으로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영화였거든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12몽키즈' 처럼 반전을 염두해 둔 영화는 또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훨씬 뒤에 개봉했던 '프리퀀시'나 '나비효과' 가 시간 여행자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12몽키즈' 속에 나와 있는 미래는 고정되어 있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또한 영화 속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설정은 '터미네이터'와도 닮았습니다. '터미네이터'에서도 미래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로봇이 과거로 왔고, '터미네이터'도 과거로 돌아와 존 코너를 지켰었죠. 이 '터미네이터'에서는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가 살아남았고, 미래의 지도자가 되어 인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2 몽키즈'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여타의 영화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제임스(브루스 윌리스)'가 과거에서 벌인 활약이 미래의 세계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정보 탐색 내지는 전파 방지를 위해 과거로 보내진 제임스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합니다. 그가 끝까지 쫓아다녔던 '12 몽키즈'는 결국 범인이 아니었고, 바로 눈앞에서 어릴 때 보았던 노란 셔츠의 남자가 바이러스가 든 가방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죠. 이미 미래에서 온 그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 속에 나타났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범인을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도 물론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거대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제임스는 무기력했고, 결국 그가 꿈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총을 맞아' 사망하고 맙니다. 이것은 미래는 가변적일 수 있다는 '프리퀀시'나 '나비효과'의 세계관과는 확연히 다른 결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운명은 정해져 있으며, 시간 여행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영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님 킹왕짱
또한 '12 몽키즈'의 주인공은 우리가 헐리웃 영화 속에서 익히 보아 왔던 영웅형의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제임스는 범죄자의 신분으로 몇 십년 전 과거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그다지 정의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우월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형' 인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임스는 늘 미래에서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에 빠져 불안해 하는 인물입니다. 엉뚱한 행동 탓에 정신병동에 수감되기도 하고, '12몽키즈'를 뒤쫓는 과정에서도 뛰어난 지략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죠. 그는 늘 모호한 자신의 꿈과 감시 당하고 있는 망상, 그리고 불안함 속에서 시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12몽키즈의 정체를 파악하기는 했지만, 바로 눈 앞에서 진짜 범인을 놓쳐 버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겁니다. 결국 그가 주체적으로 해결한 것은 없었던 셈입니다. 그저 운명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을 쳐 보았던 것이죠. 이것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또 다른 시간여행 영화 '루퍼'와도 차이를 보이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루퍼' 속의 젊은 주인공은 스스로를 없앰으로써 미래의 자신을 제거했거든요. 영화 속의 갈등구도를 해결하는 주체가 주인공이나 아니냐의 여부는, 그 주인공의 성격이 어떠한가를 볼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12 몽키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겉으로 보기에 이 영화는 '반전'을 꾀하는 작품입니다. '12몽키스'를 잡아내기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한 제임스였으나, 결국 범인은 존재감이 없던 조수라는 사실을 영화 말미에 가서야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12몽키스'를 잡기 위해 언급했던 그 단어 자체가 '12몽키스'를 결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시간루프 영화' 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2 몽키즈'는 상당히 동양적인 사고관을 포함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큰 얼개에서 본다면 제임스 때문에 '12 몽키스'가 만들어진 것인지. '12 몽키스' 때문에 제임스가 과거로 보내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운명의 큰 흐름 속에서는 아무리 자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한들, 결국 그 흐름의 질서에 맞게 재 편성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제임스'의 죽음과 '바이러스의 전파'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근원적인 물음은 이 영화에서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지는 생각이 아닙니다. 무엇이 먼저 생겨났는가에 관계 없이, '일어나야만 할' 사건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한 마지막 장면도 이 틀 속에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범인이 비행기에 앉아서 만난 사람은 미래에서 온 여 과학자였습니다. 여 과학자는 범인으로부터 바이러스 샘플을 채취해 가겠지만, 아마도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막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 과학자가 성공적으로 범인의 동선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운명의 흐름 속에서 바이러스는 어쩔 수 없이 퍼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과학자가 샘플을 채취해 간 미래 시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질대로 퍼진 현실은 그대로이겠지만, 샘플을 활용하여 만든 백신은 미래 사람들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겠지요. 물론 아닐 수도 있겠구요. 다만 제임스가 마치 한바탕 꿈처럼 지내고 갔던 과거와는 달리, 미래 세계는 가변적인 세상입니다. ... '나인'의 결말과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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