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양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사뭇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일본은 혈연 사이에 따져야 할 선이 한국 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편이라고 볼 수 있죠. 일본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우리 보다는 유연합니다. 물론 이것이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라고 잘라 말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냥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리라 생각됩니다.
'버니드롭'도 이와 같은 일본인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다이키치가 어린 소녀 '린'을 만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죠. 린은 아버지의 숨겨둔 자식도 아니고, 무려 '외할아버지'의 숨겨둔 어린 딸이었습니다. 아직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 아이가 사실은 다이키지치의 '이모'가 되는 셈이었죠. 이것이 우리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사용되었더라면, 아마도 막장 드라마에서 비롯된 출생의 비밀 정도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겁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는 혈연과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빠 되기는 힘들다...
그런데 '버니드롭'에서는 외할아버지의 어린 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이 어린 '이모'와 '조카'가 어떻게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촌형제' 내지는 '아버지와 딸' 정도의 관계로 보이는 이들 가족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이키치는 정말 어린 아버지가 된 것처럼 어린 이모를 극진히 키웁니다. 어린 여자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던 지라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고, 야근하는 날이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올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싱글대디'의 그것과도 유사하죠. 더욱이 그는 린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야근이 없는 물류 부서로 전배신청까지 합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어린 이모로 나오는 '린'도 다이키치를 가족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이키치가 늦는 날이면 혼자 어린이집에서 그를 우두커니 기다리고, 그에게 가장 맛있는 주먹밥을 요리해 주며 행복해 하죠. '린'은 다이키치가 마치 아버지라고 되는 것처럼 그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린'은 '딸바보'아버지들을 대량 생산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본격 딸 바보 생산 컷
결국 이들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첫만남으로 시작했을 지언정,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가족상을 보여주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그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본질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주면서 말이죠. 어린 이모와 장성한 조카라는 독특한 조합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이들이 보여주었던 따뜻하고 잔잔한 감성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일본영화답게 잔잔하고 느릿합니다. 딱히 극적인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다이스키의 연애사업 또한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원작에서는 '다이키치'와 '린'이 나중에 결혼을 한다고 하니, 우리 정서와는 조금 동떨어진 작품이 될 수 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이키치와 린이 가족이 되며 나누는 따뜻한 교감과 잔잔한 정서가 마음에 들었던 이들에게는 매우 훌륭한 힐링 영화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린의 천진난만한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부모가 된 듯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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