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은, 참 특이한 영화입니다. 전통적인 디즈니 공주가 갖춰왔던 우아함과 기품 혹은 용감함이 주인공 라푼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보다 라푼젤은 흔한 10대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춘기 감성과 불안정한 감정기복을 가지고 있는 산만한 소녀에 더 가깝습니다. 오랜 기간 갇혀 살면서 몸에 밴 '대인기피증' 혹은 '지나친 경계심'은 라푼젤이 집을 떠나며 느끼게 되는 장면에서 보였던 '조울증' 정서에서 잘 드러나게 되죠. 이와 같은 비틀기 정서는 다른 캐릭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라푼젤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유진도 특이한 캐릭터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알라딘도 아닌 것이, 무려 '도둑' 신분을 가지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알던 디즈니의 남자들은 용감하고 정의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악마와 싸워 공주를 구해냅니다. 하지만 유진은 기사나 왕자라기 보다는 허당끼 많고 느끼한 허세남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악당에게 죽음을 맞아 결국 '라푼젤'의 머리카락 희생으로 부활하게 되는 감동스러운 (?) 결말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더 이상 왕자가 공주를 구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죠.
못된 마녀로 나오는 라푼젤의 '계모'는 어떨까요. 전통적인 만화였다면 마녀는 라푼젤을 늘 학대하고 괴롭혔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계모는 과잉보호에 '이게 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라는 이야기로 라푼젤의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할 뿐더러, 그녀를 영영 옥탑방에 가둬놓으려 하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보여주는 라푼젤에 대한 태도는 극진합니다. 그것이 라푼젤의 머리카락 때문이라고는 해도, 기존의 마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마녀와 라푼젤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겪는 '엄마의 딸' 관계와도 유사합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딸로 하여금 은연중에 엄마에게 복종할 것을 조종하는 그릇된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널 보호하는 것은 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너는 나를 슬프거나 걱정하게 만들면 안된다,,, 라는 생각을 자식에게 주입시켜, 수많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 내지는 '마마걸' 내지는 소심한 인간을 대거 생산해 내는 부모들과도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양육자 밑에서 자라난 라푼젤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결국 라푼젤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인물들 간에 가지고 있는 왜곡된 심리상태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마냥 웃기고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들 내면에는, 상처받아 뒤틀리고 불안정한 또 다른 모습들이 숨어 있는 것이죠. 그와 같은 '정형적이지 않는' 성격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갑작스러운 장면들이 우리에게 더욱 더 큰 의외성을 안겨주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라푼젤이 더욱 더 코믹한 영화가 되었던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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