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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영화라면 팝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Dorian Gray 2009)

by Ms. Jane 2013. 8. 11.

 

 

 

 

 

영화를 다 보고난 후, 내 영혼은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다. 뒤틀려지고 징그럽고 쪼그라든 잔혹한 모양일지, 아니면 그 반대의 모양일지.  한없이 아름답고 젊은 도리안 그레이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영혼이 갇혀 있는 초상화의 모습은 충격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점차 흉측해져가는 그림은, 나이를 전혀 먹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주인의 마음을 담보로 잡아두고 있는 듯 했다. 끝내는 괴기스러운 소리마저 내는 초상화의 모습은 공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긴장감을 조성하기까지 하니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그의 몰락이 도리안 그레이의 선천적으로 악한 본성탓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었다. 본래 순진하고 아름다웠던 청년이 세속에 찌든 주변 인물(헨리 : 콜린 퍼스)에 의해 쾌락을 알고 타락해 가는 장면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하고 내면이 불안정하며, 이에 따른 타락 또한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안정함이 두려움을 만들고 살인에 살인을 거듭하며 점차 뒤틀려지는 도리안 그레이의 속마음은, 초상화에서 꿈틀대는 애벌레 만큼이나 측은하고 징그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을 테다.

 

인간은 대부분 불안정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도리안 그레이가 결국 몰락한 이유는 흉측해져가는 자신의 속마음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탓이 아닌가 한다. 영화 속에서 도리안 그레이는 아름답고 당당한 겉모양과는 다르게, 자신의 영혼이 깃든 그림을 두려워하고 천으로 덮어 방 안에 가두어 놓는다.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이미 쾌락과 타성에 젖어든 나머지, 왜곡되고 뒤틀린 자신의 영혼을 직시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탓이다. 뿐만 아니라,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세상사람들로부터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늘 쫓기는 듯한 불안정한 인생을 산다. 만일 그가 자신의 왜곡된 영혼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였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 초상화란 그 형상이 분명하며, 늘 바라볼 수 있는 미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눈만 있다면 적당한 색감으로 덧칠할 수 있으며 다시 그려낼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정답은 초상화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에 있다. 자신의 영혼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덮어놓을 것이 아니라, 이를 용감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