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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12) 사람의 인연이란 마음먹은 대로 쉽게 이어지지도, 끊어지지도 않는 법이다. 나는 오과장님에게 선톡을 하면서 내가 억지로 이 인연을 이어가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늘 고민했다. 항상 FM 스러운 대화만을 나열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오늘 날씨가 참 좋죠.' '그래서 취미는 무엇인가요? ' 이따위의 대화를 이어가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오과장님은 한 여덟 시간에 한번 씩 답을 해 주는 사람이었다. 대화도 잘 이어지지 않는데다 정중하고 예의바른 카톡 문자만 받다보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순간이 오고는 한다. 그렇게 한달여를 보냈나 보다. 답답해진 나는 진짜로 리안 호텔까지 찾아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바빠서 미안하단다. 어쩌라는 걸까. 그러면서 잠시 따로 보자고 하더니 .. 2016. 5. 15.
[Present](11) # 만약에... 리안 호텔을 체크 아웃 하고서도 오과장님과의 인연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었다. 정산 핑계를 대고서 명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과장님한테 정산하면 안돼요?" 나는 계속해서 정산만을 외치는 오과장님의 말버릇을 이용하여, 그로부터 명함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이른바 번호따기를 이행한 셈이었다. 이렇게 번호를 받는 것이 쉬울 줄 알았으면, 진즉에 말을 걸어 볼 것을 그랬다. 왜 이렇게 오과장님을 무서워해서, 일부러 인사도 안하고 저 멀리 돌아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이것은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던데, 아마도 내 성격은 좀 소심한 것이 맞을 듯 했다. 명함을 받고 이름도 얻고, 전화번호도 따고, 카톡 친구도 되고, 일이 이렇게나 일사천리로 돌아갈 줄은 내 미처 .. 2016. 4. 2.
[Present](10) # 하지 못한 말 겨울하면 또 유자차였다. 말을 많이 하는 프론트 직원에게 따뜻한 차는 부담없이 선물할 수 있는 음료였고, 겨울 밤에 근무를 하다 보면 면역력이 저하되어 감기에 걸리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다면 비타민 씨가 많이 들어 있는 유자차가 가장 적합한 선물일 법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유자차 정도면, 나름의 성의를 표현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오과장님도 나를 좀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지만 유자차를 선물하는 순간, 나는 또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았다. "그... 정산은 어떡하실 거예요?!" 내가 이 순간에서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선 오과장님으로부터 멀찍히 떨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까지 뛰어가 이렇게 처절하게 외쳤다. "죄송해요.. 2016. 4. 2.
[Present](9)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자꾸 과장님의 개그 페이스에 말려든다는 사실이었다. 오과장님을 관찰하고 팬질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었는데, 나 역시 얼토당토 없는 일로 어이없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한참 후에야 밝혀지게 되었다. 한밤중에 로비로 내려왔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이것 또한 기회였다. 이 기회를 틈타 오과장님이 일하시는 프론트 가까이에 가보아야만 했다. 평상시에는 옆에 가서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기사 이제 공짜 쿠폰도 없는데 할말이 딱히 없긴 했다. 아마 오과장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여간에 프론트 데스크 근처로 가긴 했는데, 이번에는 또 오과장님이 없는 것이 섭섭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들쑥날쑥한 것도 불만이었다. 그래서 오과.. 2016. 4. 2.